저물 무렵
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며
하늘 한구석 뒤엉킨
하루살이떼의 마지막 혼돈이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
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
바람이 푸른 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
둑방의 꽃들이
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
어둠이 빛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를
내 속에도 둥글게 새겨넣으며
가만 가만히 거기 서 있으려 한다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 하나
옹이로 박힐 때까지
예전의 그 길, 이제는 끊어져
무성해진 수풀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그런 저녁이 있다」 -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 1994, p.10.
그리고 다시 26;
내 것이 아닌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욕망, 나는 무엇을 채우며 살고 있는 것인가?
살고 있는 척, 살아지는 척, 잘 지내고 있는 척, 씩씩한 척; 언제까지여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