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십년 구월의 어느 날;
米佛(日記) 2020. 9. 26. 05:44
[이천이십년 구월의 어느 날;]
나이 들면 사는 게 쉬워지는 줄 알았는데
찬비 내리는 낮은 하늘이 나를 적시고
한기에 떠는 나뭇잎 되어 나를 흔드네.
여기가 희미한 지평의 어디쯤일까.
사선으로 내리는 비 사방의 시야를 막고
헐벗고 젖은 속세에 말 두 마리 서서
열리지 않는 입 맞춘 채 함께 잠들려 하네.
눈치 빠른 새들은 몇 시쯤 기절에서 깨어나
시간이 지나가버린 곳으로 날아갈 것인가.
내일도 모레도 없고 늙은 비의 어깨만 보이네.
세월이 화살 되어 지나갈 때 물었어야지,
빗속에 혼자 남은 내 절망이 힘들어할 때
두꺼운 밤은 내 풋잠을 진정시켜주었고
나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편안해졌다.
나중에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안개가 된 늙은 비가 어깨 두드려주었지만
아, 오늘 다시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는
빗속에 섞어 내리는 당신의 지극한 눈빛.
-늙은 비의 노래 / 마종기,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문학과지성사, 2002, p.90.
'술에 만취하는 것은 일시적인 자살이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부정적일 뿐만 아니라 불행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킨 상태이다.' 지나친 고통이 스스로를 절망으로 몰아가지 않도록 잔인한 매혹에 빠져 산다. 사는 것인가 죽어있는 시간들의 묶음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