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랑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크기, 깊이를 깨닫는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포함해 모든 대화는 최음제이며, 인생에서 깨달음만 한 오르가슴은 없다. 상처와 고통은 그 쾌락과 배움에 대해 지불하는 당연한 대가다. 사랑보다 더 진한 배움(intensive learning)을 주는 것이 삶에 또 있을까. 사랑받는 사람은 배우지 않기 때문에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유래-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내부의 힘이다. 사랑하는 것은 자기 확신, 자기 희열이며, 사랑을 갖고자 하는 권력 의지다. 그래서 사랑 이후에 겪는 고통은 사랑할 때 행복의 일부인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상처 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언어가 자란다. '쿨 앤 드라이', 건조하고 차가운 장소에서는 유기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상처받는 마음이 사유의 기본조건이다. 상처가 클수록 더 넓고 깊은 세상과 만난다. p.33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2013)
영화 '브림스톤'(Brimstone)에서 목사 역을 맡은 가이 피어스는 화염에 휩싸여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이렇게 말한다. "불길 때문에 지옥을 견딜 수 없다는데, 그렇지 않아. 바로 사랑의 부재 때문이야." 인간은 사랑의 고통으로 통곡하고, 좌절하고, 때론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고통스러운 것은 사랑의 부재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불길을 견디고, 삶을 이어갈 희망을 갖고, 지구별에 존재함을 확인받는 것. 이것은 사랑만이 가능한 일이리라.
무서울 정도로 잔인한 목사 역을 맡은 가이 피어스의 미친 듯한 연기가 놀라워 그의 영화를 여러 편 찾아보았다. 실망시키지 않는 그의 연기와 영화들. 한동안 곡소리조차 내지 못해 스스로에 갇혀 지냈는데 그를 알게 되고 그의 영화를 보며 동맥에 푸른 피가 흐르는 것을 느낀다. 5월은 가이 피어스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 지금도 그가 출연한 영화 '우리가 사랑한 시간'(Breathe In)의 o.s.t를 들으며 행복하단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세상의 소리들이 사라져 간다. 아니 세상의 모든 소리가 귀 속으로 빨려 들어가 더 이상 울림이 되지 않는다. 이제 세상과 소리를 가지고 줄다리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소통과 불통의 경계에서 춤만 추면 되는 것이다. 남은 것은 익숙해지는 것뿐. 가늘어져 가는 신경을 부여잡고 예민을 떨지 않아도 괜찮다. 익숙해져야 하는 것만이 남았을 뿐.
그리고 이제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