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각적인 향락"은 아름다울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것의 아름다움은 "한참 뒤에야" 다른 것의 빛 속에서, 귀중한 추억 속에서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지속성에, 사색적 종합에 의존한다. 순간적인 광휘나 자극이 아니라 사물들의 잔광, 사물들의 여운이 아름다운 것이다. "사물들의 영화적 흐름"은 아름두움의 시간성이 아니다. 조급성의 시대, 점적인 현재들의 영화적 연속은 아름다움과 진리에 접근하지 못한다. 사색적인 머무름, 금욕적인 자제 속에서 사물은 그 아름다움을, 그 향기로운 정수를 드러낸다. 그 정수의 구성 성분은 잔광을 발하는 시간의 침전물이다. p.84
"고유하게 존재하지 못하는 자가 항상 시간을 잃어버리고 늘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결단코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고 '언제나 시간이 있다'는 것은 시간적인 면에서 고유한 실존이 지니는 탁월한 특성이다." 빠듯한 시간은 고유하지 못한 실존의 증상이다. 고유하지 못한 실존 속의 현존재는 자기 자신을 세계에 빼앗기는 까닭에 시간을 잃어버린다. "단호하지 못한 자는 염려의 대상에게 분주하게 매달리며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염려의 대상으로 인해 자기 시간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그런 이들은 입버릇처럼 '나는 시간이 없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시간 전략은 결국 '나는 시간이 없어'를 '나는 늘 시간이 있어'로 전환시키는 데 있다. 그것은 지속성의 전략이며, 자기의 실존적 동원을 통해 시간에 대한 잃어버린 주권을 다시 확립하기 위한 시도이다. p.108 『시간의 향기』 한병철(2013)
냉수 한 컵과 진한 커피 두 잔. 그리고 세 시간 동안의 일과(日課).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시간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시간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인지, 이끌려 가고 있는 것인지 하는. 과정과 결과는 같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질곡은 같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 아직 무어라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주체적으로 시간을 이끌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간혹 상황에 휘둘려, 나와 관계된 사람들에 휘둘려 원치 않음에도 삶이 끌려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그 시간 자체가, 그 상황 속에서 끌려 가고 있는 나 자신이 견딜 수 없다. 이런 것도 인생이야 하고 흘러가는 데로 이끌려 가도 삶은 이어지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그 끝이 자명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멈춰 선다. 상황과 타자들에게서 멀어져 관조한다.
시간에 향기, 머무름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 사색의 시간, 무하유지향에서 불어오는 시간의 향기.
모르는 것이 많은 인생은 치러야 할 숙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설렘. 떨림과 두근거림 그리고 아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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