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골목길이 어스름 속으로
강물처럼 흘러가는 저녁을 지켜본다
그 착란 속으로 오랫동안 배를 저어
물살의 중심으로 나아갔지만, 강물은
금세 흐름을 바꾸어 스스로의 길을 지우고
어느덧 나는 내 소용돌이 안쪽으로 떠밀려 와 있다
그러고 보니, 낮에는 언덕 위 아카시아숲을
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어둠 속이지만
아직도 나무가 제 우듬지를 세우려고 애쓰는지
침묵의 시간을 거스르는
이 물음이 지금의 풍경 안에서 생겨나듯
상상도 창 하나의 배경으로 떠오르는 것,
창의 부분 속으로 한 사람이
어둡게 걸어왔다가 풍경 밖으로 사라지고
한동안 그쪽으로는
아무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우연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 침묵은 필경 그런 것이다
나는 창 하나의 넓이만큼만 저 캄캄함을 본다
그 속에서도 바람은
안에서 불고 밖에서도 분다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길은 이미 지워졌지만
누구나 제 안에서 들끓는 길의 침묵을
울면서 들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침묵 - 김명인 [길의 침묵 1999]
취해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글자에, 봄에, 대상에, 소리에, 주(酒)님에게...... 반응은 하고 있으나, 비현실적이기만 한 시간들. 현실과 구별되지 않는 시간들. 중독자가 된 기분이다. 그러나 습기 먹은 시간들, 무언가를 배우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시간들, 스스로 살아있음을 절감하는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