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의 눈

 

 

지난번 글 말미에 "제도는 민주적인데 거기서 터무니없는 비민주적 결정이 도출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얘길 썼다. 역사에서 그런 예를 찾는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독일 나치당의 대두와 정권 탈취일 것이다. 나치당은 '민주적 선거'의 결과 득표율을 늘려갔으며, 일반 시민 다수는 나치에게 협박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추종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생각해온 것 이상으로 자발적으로 나치를 지지했다. 그런 사실은 최근 연구를 통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이런 사례는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조지 부시가 미국 의회에서 압도적 다수의 찬성을 얻어 이라크 침공을 개시한 일이 기억에 새롭다. 타자에 대한 일방적이고 단순한 적의만큼 일반 시민을 결속시키고 그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효과적인 게 없다. 그것은 노골적이면 노골적일수록 효과적이다. 어폐가 있는 말이긴 하나 굳이 얘기하자면, 일반 시민이라는 존재는 그다지 현명하지 못하다. 그들이 현명하다는 전제 아래 세상일을 판단하거나 예측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걸 역사는 가르쳐주고 있다. p.98.

 

 

국가, 국민, 영토에서 배제되고 추방되고, 공포정치에 이용되는 특정 민족, 특정 종교, 특정되어 지칭되는 소수들, 가난한 사람들...... '우리'를 만들기 위해 구별 짓는 행위들과 이를 정당화하는 정치와 제도들, 사회 외부로 분류되고 감시되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생명체들, 그들은 '상시적 위협' 또는 '불안 인자'라 불리며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 모든 것은 '예방적'이란 꼬리표만을 달고서 다수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너무도 쉽게 작동된다. 이에 다수는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너무도 쉽게 호응하고 공포에 대한 우려와 안전지상주의에 빠진다. 실재하는 공포와 만들어진 공포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아니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예방적'이기 때문이다.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은 시 쓰기를 '투병 통신'이라 했다. 누구에게 가닿을지 모르는 글을 유리병에 넣어 바다에 흘려보내는 일이다. 경쟁 사회에 갇힌 '수인'인 이 시대 사람들은 '투병 통신'을 통해 '외부(바깥)'를 알 수 있다. (중략) 유리 병이 없다면 작가들이 외부나 미래를 향해 통신을 할 수 없고, '수인'들이 외부와 미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p.220.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현대인의 관계 맺기는 피상적인 의사소통에 그칠 수 있다. 관계의 양은 절대적으로 많아졌으나 타인에 대한 포용의 질은 저하되고, 나와 다른 집단과의 교류는 배제된다. 즉, '끼리끼리'만이 모여 불편하지 않은 대화, 정보만을 나누려 한다. 타인에 대한 고민, 이해와 배려는 사라지고 새로운 것은 창조되지 않는다. '끼리끼리'의 고립감은 심해지고, 모이면 모일수록 사유의 폭이 좁아지는 역설이 벌어진다. 지금 이 시간 첼란이 말한 '투병 통신'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인가? 외부가 존재함을 알고는 있으나 포용보다 배제를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손안에 모든 정보를 지니고 다니는 현대인들은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어차피 타인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는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과 사실 아닌 것은 구별되지 않고, 모든 것이 진실인 양 유통된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와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책임을 동반하지 않는 자유는 사회악으로 변질할 위험을 안고 있다.

 

 

나는 지금 대체로 평온하고 안전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노후 걱정 따위를 해야 할 나이가 돼버렸다. 하지만 이건 어쩐지 아니야, 이런 인생은 젊었을 때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라,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항상 지금의 내 생활이 어쩐지 모조품 같고 그 바깥에 위험으로 가득 찬 진실이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서경식 『디아스포라의 눈, 한겨레출판, 2012, p.271.

 

 

나는 '위험으로 가득 찬 진실이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위험으로 가득 찬 사실이 있다는 진실'에 고민하게 된다. 

이 시간에도 뉴스에선 사실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 넘쳐 난다. 인간은 지구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건조한 입술에서 허망한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시험이 끝나고서 놀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시험 준비 기간이 더 좋았던 것도 같고.

서경식 선생님 책 2권을 읽고, 요즘엔 잘 읽지 않게 되는 소설 2권을 읽고, 고민하고 있는 것들에 관한 책 3권을 읽고,

너무도 보고 싶었던 영화를 15편 정도 본 듯하다. 알 수 없지만 술도 좀 마시고...... 더 알 수 없지만 책도 좀 지르고...... ㅡㅜ

새벽이 너무 길어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날들이 계속된다. 웅크리고 날이 밝아오길 기다리는 마음은 공허하다.

...... 늘 공허하다면서 재미있는(?!!) 책을 발견하면 흥분하게 되는 난 뭐란 말인가...... 아놔..... ㅡ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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