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8 - 20201224]
누군가 자신이 진실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소리를 지어내는 데는 그러한 신념이 필요 없다. 따라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진리에 대해 반응한다. 그리고 그는 그만큼 진리를 존중하는 셈이다. 정직한 사람이 말할 때, 그는 오직 자신이 참이라고 믿는 바를 말한다. 거짓말쟁이는, 이에 상응하게 자신의 발언이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그렇지만 개소리쟁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무효다. 그는 진리의 편도 아니고 거짓의 편도 아니다. 정직한 사람의 눈과 거짓말쟁이의 눈은 사실을 향해 있지만, 개소리쟁이는 사실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개소리를 들키지 않고 잘 헤쳐 나가는 데 있어 사실들이 그의 이익과 관계되지 않는 한, 그는 자신이 말하는 내용들이 현실을 올바르게 묘사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자기 목적에 맞도록 그 소재들을 선택하거나 가공해낼 뿐이다. -p.58.
거짓말을 하는 것은 개소리하기와는 달리 자신을 진리를 말하는 데 부적합한 사람으로 만드는 경향은 없다. 말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는 것 외에는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마구 주장하는 개소리 행위에 과도하게 탐닉하다 보면, 사태의 진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정상적 습관은 약화되거나 잃어버리게 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같은 게임 속에서 반대편으로 활동한다. 그들 각각은 자신들이 이해하는 사실에 반응한다. 비록 한쪽의 반응은 질리의 권위에 따르고, 다른 쪽의 반응은 진리의 권위에 저항하며 그 요구에 맞추기를 거부하지만 말이다. 개소리쟁이는 이러한 요구를 모두 무시한다. 그는 거짓말쟁이와는 달리 진리의 권위를 부정하지도, 그것에 맞서지도 않는다. 개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다. -해리 G. 프랭크퍼트, 『개소리에 대하여』, 필로소픽, 2016,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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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시대에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어리석은 낭만주의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잔혹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공감, 희생, 용기, 우애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이 복잡한 역사에서 우리가 강조하는 쪽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약 최악의 것들만을 본다면, 그것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파괴할 것이다. 사람들이 훌륭하게 행동한 시대와 장소들 - 이러한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 을 기억한다면, 행동할 수 있는 에너지, 그리고 적어도 이 팽이 같은 세계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행동을 한다면, 어떤 거대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미래는 현재들의 무한한 연속이며, 인간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쁜 것들에 도전하며 현.재.를 산다면, 그것 자체로 훌륭한 승리가 될 수 있다. - 하워드 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이후, 2002,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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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 p. 27.
인류의 역사는 낡은 관념과 새로운 관념의 투쟁의 역사라는 것은 이론으로서는 상식이 되었다. 중세유럽을 지배한 종교와 인간의 이성과의 피비린내나는 투쟁의 긴 암흑의 역사를 새삼스럽게 상기할 필요도 없다.
보수적 본능은 그 사회나 제도의 개혁이 사회의 기호를 위태롭게 한다는 보수적 교리를 낳게 했다. 이와 같은 보수적 사고는 미신으로 더욱 강화된다. 습관이나 사고방식의 전체를 대표하는 어떤 이념이 종교와 결부되고 그것이 신의 보호와 축복 아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그런 사고와 사회질서에 대한 비판은 독신瀆神을 뜻하게 되어, 그것은 신에 대한 무엄한 도전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갈릴레이, 브루노 등 인간이성을 대표하는 얼마나 많은 고귀한 사람들이 권위를 추켜올리는 '미신'의 제단에 피를 바쳐야 했던가. (......) 모든 가치를 흑백으로만 가리려는 이 관념이나 사상은 결국 그것이 파괴하려 했던 대상에 끼친 피해의 수십 배의 피해를 자기 자신에게 끼쳤다. - p.250.
참지식인은 비판을 생명으로 한다. '비판批判'은 "시是와 비非를 반半으로 쪼개어 보여준다"는 뜻이다. 지식인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진리를 밝히고, 진리를 억압하는 권력구조를 비판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식인이 가진 힘이란 이성적인 사고와 진리에 대한 민음과 용기뿐이라고 생각했다. 비판할 줄 모르는 지식인은 육체적 고자鼓子와 같다.
명색이 학문을 하고 언론을 한다면서 옳고 그름을 가지리 않고, 자신의 이념과 이해, 시대상황의 변화와 인맥에 따라 가치판단과 비평의 잣대를 달리한다면, 그것은 사적으로는 인간본성을 죽이는 일이고, 공적으로는 진실을 속이는 범죄가 된다. - 김삼웅, 『리영희 평전』, 책보세, 2010,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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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성행하는 '기회 사재기'방식 중 하나는 이른바 '스펙 품앗이'다.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기들 간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자녀들의 스펙을 만들어주는 걸 말한다. 대오교육컨설팅 대표 오기연은 "특히 부모가 교수·의사·사업가 등 고소득 전문직이고 서로를 잘 아는 특목고 유학반에서 성행했다"며 "제약회사 임원인 아버지는 연구소 투어를 시켜주고, 대학교수 아버지는 학교 연구소에 인턴이나 자원봉사자 기회를 주는 식"이라고 했다. 한 입지 전문가는 '"스펙 품앗이'는 교수사회에서 이미 공공연한 관행"이라고 했다. - p.51.
이분법은 불가피할 때도 있고 필요할 때도 있지만, 한국 사회를 집어삼킨 이분법은 그런 게 아니다. 온몸에 체화된 습관이요 신앙이다. 이분법은 자신이 속한 진영의 이해득실 차원에서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 이런 이분법도 그 나름의 명분은 있다. 개별 사건을 그 사건 자체로만 보지 않고 진영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평가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들은 '대국적', '종합적', '총체적', '장기적', '미래지향적' 등과 같은 것들이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것은 반대 진영이 얼마나 어리석고 흉악한 집단인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진영 내부에서 아무리 옳은 지적을 하더라도 그것이 당장 반대 진영을 조금이라도 이롭게 하는 것이라면, 그 문제 제기자는 용납해선 안 될 '내부의 적'이 되고 만다. -p.56.
자신의 경험 혹은 자주 들어서 익숙하고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가용성 편향'이라고 한다. 이 개념은 개인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도 적용될 수 있다. 특히 공적 영역에서 동질적인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현상의 위험을 경고하는 데에 유용하다. p.70.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상태에 대해 자신이 잘 아는 통찰력이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가리켜 '내성 착각'이라고 한다. 이런 내성 착각의 슬로건이 바로 "나는 나 자신을 아주 잘 알아"이다. 즉, 자기 평가를 할 때 자기 관찰에 의한 통찰의 비중을 과다하게 높이는 현상을 말한다.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특권에 무감각한 채 사회를 향해 엉뚱한 말을 해대는 것도 바로 내성 착각 때문이다. 심리학자 엘리엇 애런슨은 [거짓말의 진화: 자기 정당화의 심리학](2007)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물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 자신의 맹점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특히 특권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사람들은 이러한 맹점을 계속 인지하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풍족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지나치게 많은 특권을 누린다고 생각하거나 행운 덕분에 특권을 누린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특권은 그들의 맹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그들은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으로 정당화한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우리는 누구나 인생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특권에는 맹복적이다."- 강준만, 『강남좌파2』, 인물과사상사, 2019, p.127.
2020년 열심히 읽고, 열심히 고민하고, 열심히 한숨 쉬고, 열심히 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같은 자리를 맴돌며 같은 그리움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끌어 안고 살고는 있으나 술 없이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다른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