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인정할까 봐 뒤 돌아볼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늘로, 캄캄한 어둠으로 드리워질까 봐, 아침이 오지 않을까 봐, 두려운 그런 날들......
한 달 넘게 놀기만 한다. 과한 욕심으로 질러 놓은 책을 읽고, 늘어지는 시간을 망각하게 하는 영화를 보고, 유령처럼 자리만 차지한 채 혼술 하는 기분으로 술자리를 갖고, 미리 출력해 놓은 법조문을 읽고는 있으나 입력되지 않는 뇌를 방관하며, 짜인 일정이 없는 그저 그런 날들을 보낸다. 오지 않는 늦잠을 잔다 해도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그런 날들이, 조급함이 없는 시간들이 무심히도 흘러간다. 재활용을 내려다 놓는 소소한 일들조차 없다면 외출하지 않고 책으로 둘러싸인 방안에 스스로를 가두며 왕따놀이를 하는 주말과 건조하고 말 없는 그런 날들이 흘러간다. 그러나 무심한 날들 속에서도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는 늘 가득 차있고, 중고 알람을 신청하는 책 목록이 가득 차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으며, 흥미로운 화두를 던져주는 책을 읽고선 흥분하게 되고, 좋아하는 작가가 늘고 있다.
모든 감각들이 무뎌지는 것일까? 슬픔도 기쁨도 뇌의 어디에서, 가슴 어딘가에선 반응을 하지만 그 감정은 눈물, 표정 또는 웃음소리로 표현되지 않는다. 늘 무심한 표정을 짓고 건조한 한숨으로 대신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비해서 마음도 슬퍼하지 않는 기분이다. 관계에 있어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인지, 기억을 보았다 착각하는 것인지...... 아니, 알고 싶지 않다.
무슨 말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읔...... ㅡㅜ;
여전히 아침은 오지 않고 있다.
후두둑 대추를 땁니다
실한 알맹이가 땅 위에 널렸을 텐데
그러나 몇 놈 보이지 않았습니다
샅샅이 뒤져봐도 나타나지 않는 것들
찾아도 그건 작년에 잃어버렸던 대추였습니다
주머니에서 떨어진 동전이 쨍 소리를 끌더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하나씩 없어지고 있습니다
떨어지는 순간 사라진 것들은
좀 작은 몸집을 지녔지만
그들이 살았던 세상의 전부를 끌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상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조금씩 비워져가는 지상은 사라진 곳입니다
잃어버려진 사람들만 걸어다닙니다
어디로 튕겨져온 것이겠습니까
작년에 잃어버렸던 대추를
작년에 읽어버렸던 내가 줍고 있습니다
사람을 묻으면 고만한 몸집의 흙이 대신 솟아나듯
잃어버린 자리에
누군가 잃어버린 것 대신 서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들이 사는 나라가 있습니다
분실물 / 윤의섭,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 문학과지성사, 1996,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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