偶然......!!!
우연이란, 서로 목적이 다른 두 개 이상의 행위(사실)가 만나거나, 서로 목적이 같은 두 개 이상의 행위(사실)가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p.65.
역사에서 우연이 우리에게 아쉬움을 남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만났으면(일어났으면)했는데 못 만나고(안 일어났고), 만나지(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만났기(일어났기) 때문이다. - 오항녕, 『호모히스토리쿠스』, 개마고원, 2016, p.74.
(우연......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만났기 때문에, 만났으면 했는데 못 만나고 있기 때문에......)
새벽 4시,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시작하며 지구별의 시간을 꾸역꾸역 흘려보낸다. 이미 도망간 잠을 더 멀리 보내려고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시간의 기억은 없지만 잠을 잤었다(?!)는 흔적을 지우고, 쌓여있는 문자와 메일을 정리한다. 그리고 낡은 단화를 구겨신고 산책을 나간다. 비가 그친 직후의 거리는 습기로 가득하다. 습기와 정적이 가득한 거리에 새벽까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녀석들이 있다. 비틀거리는 녀석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그 비틀거림의 시간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체력은 이제 그들과 다르다라 말한다. 슬픔 따윈 없다. 겪어봤으니까. 나도 그 시간대에서 비틀거렸던 기억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괜찮다. 습기와 정적이 가득한 거리엔 늘 같은 자리에서 폐지를 정리하는 노인과 늘 같은 건물에서 청소를 하는 노인, 늘 같은 시간대에 환자복을 입고 조깅을 하는 노인, 늘 같은 화단에 앉아 구부정한 자세로 담배를 물고 있는 노인이 있다. 새벽은 술 취한 녀석들과 노인들만이 깨어 있는 것 같다. 녀석들의 눈에도 보일까? 어쩌면 그들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는 노인들의 모습이. 노인들은 보고 있는 것일까? 그들에게도 새벽까지 비틀거리던 젊음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시간대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 녀석들처럼 체력이 좋지 않아 비틀거림에 동참할 수 없으니 나는 노인에 가까운 걸까? 음......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만났기 때문에, 만났으면 했는데 못 만나고 있기 때문에......)
어젠 몇 달 만에 술 없이 '잠자기'를 했다. 그냥 작정하고서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을 떠오르는 데로 생각해보기로 했기에 술 따윈 필요 없었다. 그가 준 음악과 그에게 보낸 음악을 듣고, 함께 했던 시간대로 거슬러 올라가 어슬렁거렸다. 표정과 말투, 그의 미소와 손끝으로 전해오는 아찔 함들. 그리고 그날의 공기와 주변을 맴돌던 소리들, 스쳐 지나는 바람들, 서글픈 잔향들....... 눈을 감아도 눈을 감지 않아도 떠오르는 것들, 잊혀야 할 것들이 아직도 원색을 물감을 뒤집어쓰고서 나의 심장에 흘러내린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껴지게도 하지만, 그 빠른 시간들이 오래전 일들을 바로 어제 일같이 느껴지게도 한다. 나만 그런가? 그의 말처럼 생각나게 하고 말게 하고 자기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나이와는 무관한 것인가?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만났기 때문에, 만났으면 했는데 못 만나고 있기 때문에......)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해 우울하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조금만 있으면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어서 날아갈 것 같이 기분이 좋다고 한다.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나지만 지구별에 함께 와준 친구가 신나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날아갈 것 같이 기분이 좋은 건 아니지만 우울에서 나를 건져 낼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음.... 딱 그 정도. 무작정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고, 생각하는 것은 불면을 동반하기에 새벽의 체력은 바닥을 긴다. 그래도 기어라도 갈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으.....읔.
'호모히스토리쿠스' 오항녕선생님의 책은 그리운 사람을 더욱 그립게 하는 내용의 책은 아니다. 역사 입문서에 가까운 책이다. 책을 읽다가 '우연'이라는 말에 꽂혀 한참을 이렇게 허우적 되고 있다. 책이 없었다면 나는 어디로 도망을 갔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책이 없었다면 우울해에 빠져 영영 되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멍청한 생각..... 흠.... 아니다 모르겠다. 책이나 읽어야지. 읔. ㅡㅜ.
The Swamp, 1900, oil, canvas, Gustav Kli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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