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26;

 

 

 

 

 

 

 

 

 

 

 

 

 

 

 

 

 

 

 

 

 

나 무엇이든 잘 기록할 수 있는 사람 되어 당신 모르는 잠버릇을 기록할 수 있다면

문신을 그리겠다는 당신 살갗을 내 시간으로 쓰다듬을 수만 있다면

당신의 닳은 뼈와 기억이 되어 폭설로 잠들 수 없는 밤에 당신 역사와 내통할 수 있다면

어느 신성한 연기 되어 당신 온몸을 방부할 수 있다면

한 줄 위에 나란히 이불로 널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의 광채를 다 가질 수만 있다면

어느 생에서 한 번 당신에게 부딪혔던 작은 새의 파닥거리는 심장이 되어 당신 손아귀에서 안식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리하여, 그럼에도 따위의 말들을 앞세운 추신들이 모두 당신에게 귀결될 수 있다면

그러고도 이 편지의 맨 끝에 꾹꾹 눌러 쓰나니 부디

당신은 사라지지 말아라


-「당신은 사라지지 말아라」, 이병률, 『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학과지성사, 2017, p.108.

 

 

 

 

 

 

 

 

 

 

 

 

 

 

 

 

 

 

 

 

 

 

 

 

 

 

 

 

 

 

 

 

 

 

 

 

 

 

 

 

 

 

 

 

 

 

 

 

 

 

 

 

 

 

고요하다. 지난겨울부터 여름까지의 기억이 없을 만큼 지독한 통증의 시간들은 가버린 것일까?

걷고, 한 사람을 생각하고, 별을 보러 다녀온 제주.

바다와 바람, 하늘의 별은 모두 안녕했다.

그곳에 정착을 하려 했는데...... 고요하기도 하고, 나에게 '그곳'이 없으면 숨을 쉴 수 없을 것도 같고

언제인지 모를 시간으로,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시간으로 미루는 수밖에.

......26; 당신은 안녕하신지. 언어는 부재중. 휴-

'그래서, 그리하여, 그럼에도 따위의 말들을 앞세운 추신들이 모두 당신에게 귀결될 수 있다면'......26;

 

간절함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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