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손이 아니었다면 건널 수 없었던
어둠조차 이제 여기는 없습니다
오직 당신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이 산길에 접어든 나는
더 깊은 골짜기를 찾아 헤매었지요
예전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게 있다면
단 하나라도 남아 있기만 하다면
그 어둠과 안개의 힘으로
말랐던 계곡의 물도 다시 흐르게 할 텐데
그러면 돌 몇개는 징검돌이 되기 위해
번쩍 깨어날 텐데, 어떠한 은밀함도
순결함도 남아 있지 않은 산길 위에
나는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물결을 거스르며 견디는 돌멩이처럼
「십년 후」 -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 1994, p.45.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다시없을 것들을 생각하며
하늘의 달과 멀거니 서 있는 나는 같은데
너무도 멀리 와 버린 시간
당신의 자리자리마다 설렘은 여전하건만
어디에도 없는 것들, 사무치게 아련한 것들
안녕,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