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라면 잠깐 그곳에 들고난 지도
어느덧 사십 일이 흘렀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십 일은
그곳 그리움을 시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못 되었습니다
햇살이 파놓은 누대 전면의 음각이
아직 현전처럼 생생하니 돌탑 비껴
바윗돌 듬성듬성한 구릉을 타고 뭉실뭉실
뭉게구름 피어오르겠지요
노을을 사선 긋고 흘러내린
탕탕한 전망도 오래 좋았습니다
그리하여 내 거처가 아직도 거기 있다면
한 몽유 세상 더 멀리 헤매야겠지요, 길은
여기서도 굽어 있어
방죽을 돌아가면
물위를 박차고 그 해오리들 날고 있는지요?
첨탑 위로 올려놓으면 아스라이
상징이 되는 새들, 까마득함에 젖되 마침내
구분되지 않는 푸른빛의 깊이를, 그런 조감을
오래 생각합니다
두루 돌아다닐 땅도 없지만
여기저기 빈 들판을 기웃거려온 비바람이
이즈음 여기서도 큰물지우고 있습니다
어제는 강가의 조약돌에게
모처럼 젖은 옷을 말려서 입혀 보내느라
냇가에다 천막을 치고 하루 종일
뙤약볕처럼 분주했습니다
생각은 아득한 곳으로 날리지만 머지않아
겨울이 올 터이므로
나 또한 남은 날들을 여기서 예비해야 합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추수할 말이 없다면
저 텅 비게 될 벌판이나 칼바람 속의 생들,
사실은 그 시간 잊고 지내려고
그 동안 내 안의 절도 몇 채 허물었습니다
내가 왜 그곳 그리움과도 단절한 채 홀로
가혹한 침묵을 견뎌내려 하는지,
하나둘씩, 모둠살이의 흔적 지워지고 있습니다
「사십 일」 - 김명인, 『길의 침묵』, 문학과지성사, 1999, p.26.
비 내리는 거리를 걷다 왔다. 빗소리가 좋은 새벽. 오늘은 26일;
무엇을 뚜각-거려야 하는 것일까?
생각은 많지만, 무언가를 꼭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도 어딘가에서 비처럼 내리고 싶다. 이대로 저물어도 좋을 그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