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술;

 

 

 

책은 인류의 지혜로 가득하지만 그와 함께 독도 포함되어 있다. 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그 독에 영혼을 빨리고 있는 것이다. 책을 가까이하지 말도록. 가까이하다 보면 입맛을 다시며 꿀꺽하고 싶은 것이 잔뜩 보이니까. 가까이하지 말라니까. 읽고 싶겠지만. p.55 [문제가 있습니다] - 사노 요코

 

 

사노 요코 아줌마의 말씀을 어릴 때 들었어야 했다. 지금은 소용없다. 이미 뇌와 영혼 모두가 독에 빨리고 있으니까.

(이 몇 자 쓰고 나니 배가 고프다. 왜 그런가. 속이 텅 비어 허기진다.)

 

어릴 적 나는 덩치가 작았다. 심부름을 수시로 시켜 대는 선생님 코 앞에서 멀어지고 싶어도 도무지 멀어지지가 않았다. 바로 키 때문이다. 형제들은 나와는 반대로 늘 교실 뒷자리에 앉았다. 부모님의 설명에 따르면 그들은 성격이 좋아서 먹는 족족 키로 간다는 것이다. 나는 잘 먹지도 않았지만 먹는 모든 음식을 욱-하는 감정에 다 쏟아부어 키가 자라지 않는다 했다. 한마디로 성질이 지랄 맞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덩치가 작던 내가 형제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란 오로지 말, 언어로 구사하는 기싸움에서 이기는 방법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어린 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언제나 국어사전과 백과사전을 끼고 다녔다. 그러나 후에 안 사실이지만 말 따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매번 싸움은 팔 길이의 차이로 훅- 한 방으로 끝이 났다. 상상 속에서는 나도 멋지게 한 방 먹이고 현란한 언어구사로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한결같이 긴 팔에 달린 주먹 한 방으로 쏟아지는 코피와 함께 쓴 패배를 맛봐야만 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코 잔등이 얼얼하고 분하다. 기억이란 참.

문젠 잘못된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국어사전과 백과사전을 끼고 사는 동안 내 내부에서 일어났다. 언어에, 단어에, 글자들에 흥분하는 불치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이 민감함으로 집 안의 글로 써져 있는 모든 것을 씹어먹곤 했다. 남들은 거짓말로 용돈을 타내면 군것질을 하거나 오락실을 갔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쏟아내곤 문고본 책들을 사러 서점으로 달려가기 일수였다. 그리고 이 불치병으로 아마 나는 몇 권의 책을 훔쳐오기도 했을 것이다.(과연 몇 권뿐이었을까?)

(여기까지 쓰고 나니 어지럽고 더 배가 고프다. 왜 그런가.... 텅 빈 어딘가에서 곡소리가 들려온다. 외로운가? ㅡㅜ)

세월은 흘러 그 책도둑은 뇌와 영혼, 심장 모두를 책에 빨리고 있는 독거노인이 되었답니다. 끝.

 

뭘 쓰려고 했는지 잊었다. 뇌를 비우기 위해 글자를 읽고, 글자를 나열한다. 아니다 공허. 끝없는 공허를 감당할 수 없어서. 글자놀이에 빠져 사는 것 같다. 단순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란 그냥 그런 것들.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아쉬울 것 없는 것들. 욕심이 많은 것인지, 누군가의 말처럼 만족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가 항상 과-하게 살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인지.(아놔-뭔 말인지. 휴-)

 

날씨가 선선해진 덕분인지, 시간이 흘러 조금 수월해진 덕분인지, 할 일들이 생긴 덕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시 빡빡한 일상이다. 다행이다. 공부하기 좋은 날씨, 몰입하기 좋은 날씨, 술 마시기 좋은 날씨!!

지구가 한 바뀌 자전을 해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좋아졌다. 아직 살아야 하니까. 사고 치지 않고 말이지. ㅡㅜ.

 

그리고 안녕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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